콜텍 박영호 회장, 피아노 치고 노래하는 기타왕
2021-11-19
박영호 (주)콜텍 회장은 초긍정맨이다. 어려웠던 일을 얘기할 때도 “그땐 힘들었다”가 아니라 “덕분에 더 잘 됐다”며 웃는다. 1973년 창업 이래 50년간 기타 제조라는 외길을 걸어온 것도, 세계시장 30% 이상을 차지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도 “운 좋고 복이 많아서”라고 말한다. “적당히 나눠주고 가볍게 올라갔으면 좋겠다”고도 한다.
실제로 그는 나누는 일에 열심이다. 지난해 졸업 50주년을 맞아 모교인 연세대에 청송대푸른숲가꾸기기금을 쾌척한데 이어 올 10월 다시 3억원을 내놨고, 9월 6일엔 한국유네스코협회연맹에 기부하고 협약식(MOU)도 가졌다. ‘음악을 통한 행복 전파’라는 콜텍 정신과 ‘교육· 과학· 문화의 보급 및 교류’라는 유네스코정신의 접목을 통해 국내외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각오다. 문화와 역사 등에 관심이 많은 데다 대학 선배인 유재건 세계유네스코협회연맹 회장과의 인연으로 한국유네스코협회연맹과 협약을 하고 지원을 약속했다는 박 회장을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 3층 한국유네스코협회연맹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버지 사업 실패로 26세에 창업
박 회장은 광복 다음해인 1946년 대구에서 7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부친은 6.25 때 학교를 그만두고 1956년 악기 회사를 차렸다. 바로 수도피아노였다. 1960년대에 종업원이 1300명에 이를 만큼 잘 나가던 수도피아노는 그러나 1970년대 초 국내에 불어닥친 경제위기와 8.3조치의 타격으로 문을 닫았다.
대학 졸업 후 수도피아노에서 일하던 박 회장은 해외 바이어들의 요청으로 약관 스물여섯에 기타 회사 사장이 됐다. “수도피아노에서 피아노는 내수, 기타는 수출(OEM, 주문자생산방식) 품목이었아요. 대학 졸업 후 해외 업무 곧 기타 수출을 담당했는데 회사가 문을 닫자 바이어들이 연락하더군요. 수도피아노 대신 기타를 만들어 달라구요. 은행에서 융자를 얻고 사람을 구해 100평 짜리 공장에서 기타를 만들었어요.” 1973년이었다.
순조롭던 사업은 1990년대 들어 고비를 맞았다. 국내 인건비로는 납품 단가를 맞추기 어려웠다. 결국 1994년 인도네시아, 1999년 중국에 공장을 세웠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그 결과 살아 남았고 지금은 세계 어떤 공장과 비교해도 손색 없는 수준 높은 기타공장으로 자리잡았다. 인도네시아나 중국 산 기타의 품질에 대한 연주자들의 편견을 해소한 것도 물론이다. 주문자생산방식을 계속하는 한편 1980년 자체 브랜드 콜트를 런칭하고 이어서 프리미엄 브랜드 파크우드도 출시했다.
“콜텍은 현재 세계에서 기타를 가장 많이 만드는 회사에요. 펜더, PRS, 시그마, 아이바네즈, 브리드 러브, 다카미네같은 세계 정상급 브랜드의 OEM업체로 매년 세계 130여국에 연간 100만대 이상을 공급합니다. 기타는 디자인과 기능이 워낙 다양해 한두 가지 OEM이나 자체 브랜드만 가지곤 지금처럼 성장하기 어렵지요. 세계 유수 브랜드의 OEM을 하면서 기술과 디자인 모두 광범위하게 배울 수 있었다고 봅니다.”
콜텍의 지난해 매출은 2400억여원. 2억 달러가 넘는다. 80%가 OEM, 20%가 자체 브랜드다. 직원은 인도네시아 3000명, 중국 800명 등 4000명. 콜텍의 기타 수준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정상급이다. 미국을 비롯, 세계의 기타 매장 어디를 가도 콜텍 제품이 30~50%에 이른다.매출은 지난 5년 간 매년 15% 이상, 최근엔 20% 이상 성장했다. 전자기타 뿐만 아니라 통기타도 앰프에 꽂아 사용하는 이들이 늘면서 앰프 수출도 늘었다.
9년 연속 세계일류상품 선정돼
기술과 디자인으로 세계시장을 선도하다 보니 지난해 말엔 9년 연속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됐다. 세계일류상품은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수출유망 기업을 발굴 지원하기 위해 2001년부터 선정하기 시작했다. 조건도 까다롭다. 세계시장 5위 이내, 시장 규모 연간 5000만 달러 이상, 수출 규모 500만 불 이상 등.
콜텍은 2012년부터 계속 선정된 데다 지난해엔 박 회장이 한국 악기시장 발전에 기여하고 글로벌 시장을 개척한 공로로 세계일류상품 유공 표창까지 받았다. 박 회장은 콜텍이 반세기 동안 세계 기타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비결을 두 가지로 꼽는다.
“첫째는 40년 이상 거래해온 납품업자들의 축적된 노하우가 세계적인 기술력의 바탕입니다. 두 번째는 바이어들의 변함없는 주문과 응원이지요. 세계일류상품 연속 선정에 유공 표창까지 받았으니 기업경쟁력 강화의 계기를 다시 한번 만들었다 싶습니다. 좋은 계기로 여기고 글로벌 입지를 보다 확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기타는 행복’이라는 믿음으로
박 회장이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기타는 행복’이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사옥에 있는 기타홀 앞에 ‘기타는 행복(Guitar is happiness!)이라고 써붙였다. “기타를 치고 만지는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연주자 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도 행복하겠지요. 우리는 기타만 만드는 게 아니라 행복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기타를 보다 널리 보급하기 위해 가성비 좋은 기타를 만들자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매진했지요. 그 결과 오늘의 콜텍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2000만대 이상의 기타를 만들었으니 최소 2000만명, 그 기타 연주를 들은 사람까지 합치면 수억 명의 사람들에게 행복을 준 것 아닐까요.”
콜트는 기타 시장의 메인 브랜드가 됐다. 품질과 디자인은 물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기로도 유명한데 이유는 간단하다. 생산량이 많으니 품질 좋은 원자재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근 50년 간 축적한 노하우와 기술도 있는 덕이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많이 판매되는데 최근 중국과 미국 마케팅에 힘을 쏟는다.
최근엔 하이엔드 모델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유명아티스트들과 콜라보레이션도 한다. 진 시몬스, 마티아스 잡스, 닐 자자, 티엠 스티븐스. 제프 벌린. 프랭크 갬벌리. 매튜 벨라미 등 유명한 아티스트들에게 정규모델과 완전히 차별화된 시그니처 모델을 제작하고 이 제품을 수출하면 그에 따른 로열티를 지불하는 식이다. 떠오르는 아티스트에겐 악기를 지원한다.
“콜텍의 특징적 장단점은 생산 중심 회사라는 겁니다, 기타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에요. 하지만 품질과 생산성에 집중하다 보면 음악적인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있어요. 풍부한 경험을 가진 훌륭한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은 영감을 부여해요. 유명 아티스트 후원과 신인 발굴은 그 자체로 의미 있을 뿐 아니라 사업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줍니다.”
사원 복지 & 사회 공헌에 진력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지향하는 만큼 박 회장은 사회 공헌에도 힘쓴다. 매년 기타콩쿠르를 개최하고, 문화 소외지역 방문 공연, 군부대 후원에도 앞장선다. “비즈니스맨에도 두 부류가 있다고 봅니다. 즐기는 사람과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이지요. 돈은 그저 비즈니스의 산물이에요. 그 역시 중요한 일이겠지만 화학물질을 만드는 사람이 행복할지는 의문이에요.”
콜텍은 사원 복지가 좋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본인과 자녀 학자금은 물론 식비와 차량유지비를 주고 동아리 지원도 해준다. 칼퇴근 보장에 회식 참가도 자유다. 자연히 사내에 기타와 볼링 등 각종 동아리 활동이 활발하다
“대학 때 공부를 제대로 안 했어요. 철학과를 나왔는데 철학에 대해서도 잘 모르구요. 학창 시절에 음악도 즐기고 책도 많이 읽고 사회에 나오면 인생을 좀더 아름답게 영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연대에 콜텍문화예술기금을 기부한 것도 학교에 실용음악의 바탕을 좀 깔아주면 좋겠다 싶어서였어요. 딸과 사위도 소나기(연세대학교 밴드부)에서 만나 결혼했거든요. 연세대에 클래식 외에 실용음악도 꽃 필 수 있도록 계속 후원해볼 작정이에요.”
세계적인 기타 회사 회장이면서 기타는 못친다고 한다. 대신 피아노를 친다. 쇼팽의 곡을 연주할 정도라니까 상당한 실력인 셈이다. 친구들과 만든 ‘미쳤어(Meet Us)’라는 밴드에서 피아노와 보컬도 담당한다. “백두산 여행 중 버스 안에서 밴드 얘기가 나오는 바람에 돌아오는 즉시 결성했어요. 7학년들이 밴드를 하다니 미쳤다 해서 ‘미쳤어’에요. 강근식(전 이장희밴드 멤버), 백순진 씨도 멤버에요.”
박 회장은 주위에서도 나눔의 대명사로 불린다. 콜텍문화예술재단 이사장으로 문화예술 지원에 공 들이는 한편으로 친구들과 이웃에도 ‘밥 잘 사는 회장’이다. 연세대 문과대 과대표 모임인 연문회의 평생 회장으로 노상 밥을 산다. “코로나19 때문에 어려울 때도 중국과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자체적으로 열심히 해줘 매출이 줄기는커녕 늘었어요. 사는 내내 운칠복삼(운이 일곱, 복이 셋)이에요”. 그를 아는 이들은 그러나 하나같이 “조건 없이 베푸는 삶이 복을 불러오는 듯하다”고 입을 모은다.
출처 : 여성신문(http://www.womennews.co.kr)